사람은 역시 밖으로도 나가고 그래야 한다 님계신 창아래로



1. 시작한지가 엊그제같은 학교 생활도 점점 무르익어 슬슬 이곳 저곳에서 넘쳐나는 과제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지난 주부터는 드로잉 수업 과제에 집중하다보니 그만 내일 있을 사진 수업에도 숙제가 있었다는 것을 잠시 잊어버리고 말았다. 저녁을 먹은 직후인 어제 저녁에는 부랴부랴 카메라를 챙겨 근처 숲 속으로 향했다. 99%의 구린 카메라의 잘못과 1%의 나의 부족한 재능 탓에 찍는 족족 발로 찍은 것만 같은 사진들의 행렬이 이어졌지만 그래도 추위속에서 꿋꿋하게 과제를 진행했다. 결국 마지막에는 나름 흡족한 퀄리티의 사진을 건져서 룰루랄라 투스텝으로 집으로 향하는 순간, 검푸른 하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빛줄기와 마주쳤다.

빛줄기는 사라졌다 커졌다 하며 넓은 하늘을 가로질렀다. 오로라였다. 내 생에 처음으로 만나는 오로라.

오로라는 집으로 향하는 길 내내 머리 위에서 한들한들 유영하고 있었다. 집 앞에 다다랐을 무렵엔 하늘 전체가 거의 초록색과 분홍빛으로 뒤덮일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머리 바로 위에서 거대한 오로라가 빛을 내뿜던 순간에는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움과 장엄함에 압도되고 말았다.  



2. 어젠 너무 늦게 나가는 바람에 필요한 사진들을 전부 찍지를 못했으므로 오늘은 학교에 카메라를 챙겨가서 하교길 내내 찍을 심산이었다. 길을 돌아 돌아 집으로 오는 길, 계곡가에 멈췄다. 물의 흐름을 찍으려고 했는데 오늘따라 하필이면 날이 흐려 사진이 계획처럼 잘 나오질 않은 탓에 불편하고 괴상한 자세로 한참을 바위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한참을 집중하고 있던 와중에 평화가 속삭였다. "빨리, 빨리 뒤를 봐!"

순간 아기고양이 정도의 작은 크기의 검은 무언가가 전력을 다해 계곡가를 거슬러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족제비였다. 뒤에 서서 지켜보고 있던 평화에 의하면, 족제비는 내가 올라가 있던 큰 바위 근처 어딘가에 있다가, 사진 찍느라 꼼짝도 안하고 있던 나를 인지하지 못하는 바람에 덩달에 바위 위로 올라와 내 엉덩이 바로 밑에 앉아있었다고 했다. 자긴 여기서 애기때부터 십수년을 놀았는데 족제비를 보는 건 처음이라며 놀라워했고, 내가 불쌍한 족제비를 엉덩이로 뭉갤 뻔 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집 안에만 있다가 밖으로 나오니 매일같이 신비롭고 마법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도 일상을 더욱 놀랍고 즐거웁게 만들어주는 이벤트들이 숨어있는 줄을 미처 몰랐다. 


덧글

  • googler 2015/10/09 17:57 #

    오로라를 보시다니요!! 뭔가에 홀린 것 같은 게 바로 그런 장광을 보았을 때일 거에요 :)
  • 흐르른다 2015/10/13 01:17 #

    진짜 홀린다는 말이 딱 맞네요 ㅠㅠ 정말 예뻤어요 ㅠㅠ
  • 사카린 2015/10/12 14:44 #

    너무 멋있어요! 질투의 눈물 쏟아버리고 갈테야 줄줄줄 콸콸콸... 흑흑
    식객으로 흐르른다님 집에 달려가서 시어머니 사카린이 될테야 흑흑...
  • 흐르른다 2015/10/13 01:22 #

    오세요!!!!! 대신 초밥만 캐리어 한가득 넣고 오시기?! (윙크) 함께 오로라를 반찬삼아 초밥을 먹어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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